지속가능한 캠핑에 관하여

캠핑과의 거리두기

내가 그동안 캠핑에 관심을 두지 않았던 이유는 몇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구비해야 하는 장비들이 너무 많다는 점. 캠핑의 필수 장비인 텐트부터 시작해서 음식을 해먹기 위한 식기구 및 기타 조리도구들, 의자, 테이블, 침구류 등의 부가장비들까지. 모두 구비하려면 비용도 비용이지만 사용 빈도에 비해 큰 부피와 많은 가짓수의 물건을 보유해야 한다는 스트레스는 내가 추구하고 있는 삶의 최적화에 부합하지 않았다.

두 번째로는 환경오염에 대한 경각심이었다. 전국적으로 캠핑 붐이 일어나면서 그에 따른 문제점도 커졌는데, 대표적으로는 쓰레기 처리와 노지 캠핑으로 인한 자연환경 훼손에 대한 문제이다. 이는 의식적으로 신경 쓸 수 있는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몰지각한 일부(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사람들과 정착되지 않은 캠핑 문화로 인해 캠핑 자체에 좋지 않은 인식이 만들어지게 되어 매우 안타까운 부분이다.

이러한 이유로 코로나 거리두기가 완화되고 본격적인 캠핑 붐이 일어난 시기임에도 나와 캠핑과의 거리두기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애초에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전원생활을 하고 있는 덕분에 야영이나 캠핑에 대한 로망이 적었기도 했지만 야생에서의 삶을 즐기기 위해 더 많은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 환경을 파괴하는 부분이 이율배반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캠핑

결과적으로 뒤늦게 캠핑을 시작하게 된 이유는 아이였다. 최근 아이가 성장하고 다양한 자연 생태에 대한 관심을 보이면서 부모로서 책임이 느껴졌다. 집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여행을 즐기지 않는 나와 와이프는 그렇다 하더라도 공원 산책을 하다가 떨어지는 나뭇잎 하나에도 박장대소를 하며 즐거워하는 아이에게 우리의 취향을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다고 온갖 편의 시설과 놀이시설이 한곳에 모여있는 호텔 또는 리조트로 떠나는 여행은 자연과 함께하는 여행의 취지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 또한 부모의 욕심일지 모르겠지만 아이에게 더 다양한 자연환경을 경험시켜주고 싶었고 아이와 함께 자연환경 속에 들어와 직접 생활하고 즐기며 소중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여행 방법이 캠핑 외에는 딱히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훼손을 최소화하며 캠핑을 즐길 수 있다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합리화를 하기에 이르렀다.

몰지각한 야영객이 되지 않기 위한 나만의 수칙

캠핑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나의 가치관을 스스로 깨버리고 자괴감에 빠지는 만행을 저지르지 않기 위해 정한 캠핑 수칙 세 가지가 있는데 그 수칙과 이유를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1. 노지 및 사설 야영장을 이용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노지 캠핑을 하는 이유는 대부분 사람 없고 자연 경관이 좋은 곳에서 조용하게 캠핑을 즐기고 싶다는 이유다. 하지만 그런 노지를 찾고 공유하는 과정에서 훼손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으며, 쓰레기, 오폐수 처리에 대한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설 캠핑장의 경우 사유지이지만 대부분 강이나 계곡 등의 국유지 근처에 자리 잡아 그 공간까지 사유지처럼 활용한다. 따지고 보면 불법점유가 대부분이지만 지자체에서는 별다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사설 캠핑장이 성행할수록 편법으로 국유지를 점유하는 사례는 늘게 될 것이 우려된다.
  2. 필수적인 캠핑용품 외에는 일절 구매하지 않는다.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관점에서의 수칙이다. 과도한 물건은 스트레스를 초래한다는 ‘미니멀리즘’과 ‘삶의 최적화’ 개념에서 기인한다. 나에게 캠핑 용품이란 밖에서 야영을 하기 위해 필요한 물건일 뿐이다. 따라서 꼭 필요한 용품만 사고 한 번 산 용품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교체하지 않는다. 제품을 구매하는 이유 중 ‘감성’이란 단어는 배제한다.

    텐트를 구매하기 위해 들러본 오프라인 매장의 직원에게서 ‘이 정도 급은 되어야 캠핑장에서 무시당하지 않으실 거다.’라는 이야기를 실제로 들은 뒤로 이 시장은 내가 이해하기 어려운 가치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흐름에 동참하기는 싫었다.
  3. 야영지에서는 장작불을 피우지 않는다.

    노지에서 장작불을 피우면 안 된다는 것은 기본 상식이다. 이게 왜 안되는지 설명해야 하는 상황 자체가 고역일 정도로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많다. 통제되지 않은 환경에서의 불은 커다란 재난을 불러올 수 있으며, 일단 그 상황이 발생하면 누구도 책임질 수 없다. 위험의 불씨는 아예 피우지 않는 것이 옳다.

위 수칙을 다 지키면서 캠핑이 가능할까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위 수칙을 지키지 않는다고 비난할 권리도 이유도 없다. 다만 스스로 타이트하게 기준을 정한 이유는 평소에 우연찮게 보아 왔던 눈살 찌푸려지는 행태와 무엇이 잘못된지도 모르는 그들의 무지함을 닮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위 수칙을 지키면서도 아주 좋은 환경을 자랑하는 야영지가 전국 곳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자연휴양림이다.

야영지로 자연휴양림을 선택한 이유

자연휴양림은 산림청에서 하이킹, 캠프, 산림욕, 레저, 숙박 등 자연에서의 관광이나 숙박을 모두 해결할 수 있도록 조성한 종합시설이다. 국가, 지방자치단체, 민간 차원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 곳곳에 이런 자연휴양림 시설을 조성했고 전국의 산에 상당수의 자연휴양림이 존재한다. 산림청의 통합 관리를 받다 보니 안전 및 시설관리가 좋은 편이고 전국 곳곳의 뛰어난 자연 경관을 자랑하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야영지로는 최적의 장소라 할 수 있다.

제주 붉은오름자연휴양림 (2023.09)

다만 예약제(숲나들e 웹사이트)로 만 운영하기 때문에 환경이 좋고 비용이 저렴한 자연휴양림은 원하는 날에 예약하는 것이 힘들다는 문제가 있다. 주말 및 성수기에는 추첨을 통해 선별될 정도이니 그 인기를 실감케 한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극성수기에는 캠핑을 하지 않으며 평일 위주로 예약을 잡아 다녀오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다행히 비수기 평일에는 예약이 어렵지 않은 편이다.

제주 교래자연휴양림 (2023.09)

자연휴양림은 기본적으로 규정이 엄격한 편에 속한다. 야영은 지정된 장소에서만 가능하며 외부인은 출입이 통제된다. 장작불 및 대형 화기 사용은 불가하며 음식물과 쓰레기는 지정된 장소에만 버릴 수 있다. 이런 규정들 덕분에 자연휴양림의 야영장은 비교적 깨끗하고 쾌적한 편이다. 때문에 가족단위로 조용히 즐기다 가는 야영객들에게 추천할 만한 장소다.

대전 장태산자연휴양림의 밤 (2023.10)

캠핑을 왜 하냐고 묻는다면?

도대체 캠핑을 왜 하는거야?

내가 캠핑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때 주변 캠핑족들에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지곤 했다. 돈과 시간을 들여 굳이 타지까지 가서 고생을 즐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들었던 가장 많은 답변은 ‘일상과의 단절’이었다. 북적이는 출퇴근과 격무에 시달리는 하루. 그리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느껴지는 공허함. 그런 일상을 탈피하고 잠시나마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왜 캠핑에 대한 로망이 점점 커지고 유행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이제 나 역시 캠핑을 막 시작한 사람으로서 누군가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일상과의 연결’이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경이로운 자연에서 느낄 수 있는 여유로움과 긍정적 영감은 나의 일상을 조금 더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고 그 일상을 지속하는 좋은 에너지가 되어 주었다. 자연환경이 유지되어야 캠핑도 지속할 수 있듯이 우리의 일상도 무너지지 않아야 일탈도 의미가 있다는 생각이다. 스스로 까다로운 규칙을 정하면서까지 캠핑을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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